1.4 접속 안내자 현달의 미스터리한 초대
로딩 화면이 잦아들고 나자, 갑작스럽게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가벼운 바람소리와 파도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한 명의 인물이 수려한 한복 차림으로 다가왔다. 긴 흑발을 가지런히 묶은 채, 세련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이가 바로 ‘접속 안내자 현달’이었다.
"김명호 님, 환영하네. 나는 이 수련장의 접속 안내자, 현달이라 하오. 먼저… 눈앞을 보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권위가 깃들어 있었고, 작은 미소 사이사이에는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현달의 한마디에 따라 주변 풍경이 잠시 흔들리더니, 어시장 어귀 너머로 푸른 석등이 켜진 돌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다리 위에는 은은한 등불이 줄지어 매달려 있어, 해질 녘 어시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현달은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돌다리를 건너며 말했다. "여기는 본 게임이 시작되기 전, 모험가의 의지를 시험하는 장소요. 무작정 거래와 사냥만 하다가는 진정한 상인이 될 수 없으니 말이오."
그가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 석등 사이로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니 달 표면에는 고대 상인들이 남긴 각인이 빛나는 듯 보였다. 현달은 달빛 속 글자를 가리키며 조용히 설명했다. "이 각인들을 해독할 수 있다면, 상단 거래의 비밀이 열릴 것이오. 다만 이는 연습장에서는 금지된 기술이니… 먼저 작은 초대장을 받아보게." 그는 허리춤에서 붉은 비단 봉투를 꺼내 김명호에게 전했다.
봉투를 열자, 안에는 두 겹의 두루마리와 금박으로 장식된 작은 도장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 두루마리를 펼치자, 가느다란 한문과 그림이 어우러진 퀘스트 설명이 보였다. “달빛 아래 비밀의 각인 3곳을 찾아 진정한 상인의 감각을 증명하라.”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달 표면의 지도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주황색 빛의 점 3개가 표시된 지도를 따라가면, 돌다리 아래 물가에서 반짝이는 보석이 세 개 숨어 있었다.
"이 작은 시련을 완수한다면, 너의 거래·탐험 스킬이 한 단계 도약할 것이오. 그러나 실패한다면…" 현달은 말을 맺지 않은 채 눈빛만 한 번 빛냈다. 그 눈빛에는 경고와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김명호는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들었다. 달빛 아래 비치는 자신의 아바타 모습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는 가슴 한편이 뛰었다. ‘과연 내가 이 시련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꼭 해내리라’는 다짐이 교차했다.
현달은 돌다리 뒤쪽으로 손짓했다. "자, 먼저 첫 번째 각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 따라 오게." 그들이 돌다리를 건너자, 어시장 한복판처럼 보였던 공간은 기묘하게 변해 있었다. 소금기 서린 바람은 사라지고, 대신 고요한 숲 속의 공기가 귓가를 어루만졌다. 작은 오솔길 끝에, 달빛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세 개의 돌기둥이 서 있었다.
첫 번째 돌기둥에 다가서자, 그것에는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은 물고기·상인 저울·다섯 갈래 길을 상징하는 옛 상형문자였다. 김명호는 과거 배웠던 역사 지식과 감각을 되살려 천천히 도장의 작은 버튼을 눌렀다. 돌기둥 중앙에 금빛 선이 흐르며 부드럽게 열렸다. 안에는 빛나는 수정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잘했다네…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소." 현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김명호는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그의 손에는 이미 희미한 빛을 발하는 수정 조각이 들려 있었다. 이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는 단단한 확신이 자라나고 있었다.
두 번째 각인을 찾기 위해 그들은 숲을 가로질러 호수 주변으로 이동했다. 밤의 호수는 잔잔한 안개에 뒤덮여 있었고, 수면 위에선 달빛이 잔물결을 따라 산산이 부서졌다. 현달은 호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부서진 석상을 가리켰다. "여기엔 상단 거래의 가장 큰 장애물이 잠들어 있지. 교만과 욕심. 이 중 하나라도 취한다면, 두 번째 각인을 얻지 못하리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림자는 마치 고대의 상인 정령처럼 보였고, 탁한 물결 속에서 비늘처럼 빛나는 갑옷을 두른 채 모습을 드러냈다. 김명호는 직관적으로 긴장했다. 그러나 수정 조각을 한 손에 든 채,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욕심을 버리고 공정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정령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호수 위에 올려진 작은 연꽃 잎 사이에서 두 번째 수정 조각이 떠올랐다.
"네가 깨끗한 마음으로 접근했음을 증명했구려." 현달이 조용히 칭찬했다. 두 번째 수정 조각을 받자, 김명호의 전투력과 탐험 스킬이 순간적으로 상승하는 체감 효과가 느껴졌다.
세 번째 시련은 가장 까다로웠다. 그들은 돌다리를 다시건너 어시장 구역으로 돌아왔다. 현달은 장터 한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이 상자엔 거래의 핵심인 설득과 협상의 비밀이 잠들어 있소. 상자를 열기 위해선 상인이 가져야 할 진실된 마음을 증명해야 하오." 그가 말하자 상자는 저절로 열리지 않고, 주변의 상인 NPC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NPC들은 모두 각자 상인 복장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질문을 던졌다. “거래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고 여기십니까?” 등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질문이었다. 김명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 나갔다. 자신의 진솔한 경험과 새로 깨달은 교만과 욕심을 버린 마음을 이야기하자, NPC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질문을 끝내자, 상자 위에서 황금빛 윤기가 도는 세 번째 수정 조각이 나타났다. 세 조각을 모두 모은 김명호는 현달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현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축하하네. 이 시련을 통과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모험의 문이 열릴 것이오. 다만 이 수정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오. 거래·전투·탐험에 필요한 특별한 능력을 잠금 해제해 줄 보석이니 잘 간직하길 바라오." 그가 손을 내밀자, 세 개의 수정 조각이 반짝이며 김명호의 인벤토리로 자동으로 옮겨졌다.
돌아보니 어시장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손에 남은 세 개의 수정은 은은하게 빛났고, 김명호는 가슴속 깊이 전율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망망대해를 향해 열린 출구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진짜 여정이 시작되네." 현달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맴돌았다. 한층 강화된 능력을 체감하며, 김명호는 깊은 숨을 들이켰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지만, 이번엔 두려움을 호기심이 압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김명호의 두 번째 시련이 깨어난 밤은 지나갔고, 그는 새로운 각오로 수련장을 빠져나왔다. 첫 만남에서 느꼈던 현달의 미스터리한 초대는 결코 단순한 안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진정한 모험가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었고, 이후 펼쳐질 거대한 모험의 서막이었다.